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중반에 이르고 후반으로 갈수록
이상하게 슬퍼지고 눈물이 났죠.
마음이 무거운 게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슬퍼서였습니다.
모든 우울증 환자들이 그러하듯
웃음 속에 슬픔을 감추고 삽니다.
영화 속 아서 플렉도 저에게 그렇게 느껴졌는데요,
꼭 자신의 본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사랑받고 싶어 자신의 아픔을 뒤로한 채 억지로 웃음 지으려 하고
거기서 나오는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사람들은 더욱더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며
벼랑 끝까지 내모는 모습들은
마음을 더욱더 잠기게 만들었습니다.
글을 적다 보니 새로이 드는 생각은,
만약, 아서 플렉의 상상이 아닌 정말로 누군가가
그를 진심으로 대하며 사랑해 주었다면,
"조커"라는 인물이 탄생했었을까요?
심지어 영화 후반부에는 "조커"를 옹호하는 자들이
하나둘씩 쏟아져 나오며 거리를 지배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으로 "조커"를 담고 있었던 것인지,
세상이 조금만 더 친절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에 세상은 무너졌고, 그 인물들을 만들어낸 것도
어쩌면 주변에 있던 우리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조커"라는 인물이 정당화돼서는 안 되는 것이죠.
여러 가지 방면으로 드는 생각이 많았던 영화지만
결론은
다른 사람이 나의 아픔을 알아차려주기를 바라기 전에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 이제 시작합니다!
영화 '조커(JOKER)'는 2019년 개봉 이후 단순한 슈퍼빌런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 현상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2024년 현재, 이 영화는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됐습니다.
왜냐고요? 세상이 그만큼 더 불안정해졌기 때문입니다.
조커는 단순한 캐릭터 영화가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마주 보게 만드는 거울 같은 존재이니까요.
2024년 재조명 – 조커는 왜 다시 이야기되는가?
개인적으로 저는 조커를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조금 불편했습니다.
그냥 괴짜 주인공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야기인가 싶었죠.
근데 시간이 흐르고, 다시 보니까 느낌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2024년 지금, 조커는 단순히 '옛날 영화'가 아니에요.
오히려 지금 상황에 더 잘 맞는 영화가 됐습니다.
팬데믹 이후 고립된 사람들, 점점 더 무너지는 사회 시스템, 그리고 정신 건강 문제까지.
뭐랄까, 조커가 그걸 미리 보여줬던 것 같아요.
영화 속 배경이었던 고담시의 쓰레기 더미, 쥐떼가 들끓는 거리,
냉담한 뉴스 방송까지. 전부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아닙니까?
우리 현실이랑 너무 닮았죠.
요즘 유튜브 보면 '조커 다시 보기',
'2024년 시점에서 해석하는 조커' 같은 영상도 엄청 많습니다.
학자들도 논문을 다시 쓰고 있고요.
SNS에서는 조커의 대사 한 줄, 표정 하나까지 분석해서 공유하는 글도 보이더라고요.
사실 지금 와서 보면, 아서 플렉이라는 인물은 그냥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든 슬픈 상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만 그런 건 아닐 겁니다.
사회 논란 – 조커가 남긴 불편한 진실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때 정말 말이 많았어요.
어떤 사람들은 "예술작품이다!"라고 극찬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폭력을 미화한다"면서 반대했죠.
그리고 저는 두 입장 다 이해는 돼요.
기억나세요? 지하철에서 아서가 세 명을 죽였던 장면.
그 장면 이후로 사회는 그를 악당으로 몰아세웠고,
동시에 광대 가면을 쓴 이들이 그를 영웅처럼 떠받들기 시작했어요.
이중적인 거죠. 누군가는 그를 '정의의 대변자'로 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그냥 범죄자일 뿐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너무 극단적인 감정을 끌어내는 데는 성공했다고 봐요.
보면서도 내내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게다가 사회복지 예산 삭감, 상담사 시스템 폐쇄 같은 디테일한 설정들.
그냥 영화적 장치가 아니에요.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죠.
이 영화가 공포스러운 이유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너무 리얼하게 보여준다는 거예요.
게다가 머레이 프랭클린 쇼에서 조커가 마지막에 한 말.
"내 인생은 비극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코미디더라."
그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돕니다. 너무 슬프게 웃긴 말 아닙니까?
정신질환의 그림자 – 조커가 보여준 아픔
이건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조커는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을 그대로 드러낸 영화입니다.
아서 플렉이 웃음 발작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어요.
그저 "왜 저래?"라고 할 뿐이죠.
저도 솔직히 정신과 상담받아본 적이 있거든요. 처음엔 무서웠어요.
그런데 상담받다 보니까,
나를 이해해 주려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알게 됐습니다.
근데 조커는 그런 기회마저 빼앗긴 사람입니다.
영화 속 아서는 약물치료도 끊기고, 상담소도 문 닫아요.
그리고 그는 점점 무너져갑니다.
거기서부터 진짜 비극이 시작되는 거죠.
재밌는 건, 관객들은 처음에는 아서에게 연민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그가 범죄자가 되어가는 걸 보면서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이 사람을 응원해도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을 하게 되죠.
그리고 영화는 그걸 노린 듯 아주 영리하게 연출합니다.
예를 들어, 아서가 무대에서 개그를 할 때 발작이 터지고,
모두가 웃는데 혼자 못 웃는 그 장면. 뭔가 찌릿하잖아요.
그게 바로 이 영화의 힘입니다.
정신질환은 겉으로 보이지 않아요.
근데 그게 더 무서운 거죠.
조커는 그걸 우리에게 들이대듯이 보여줍니다.
조커는 당신에게 어떤 이야기입니까?
조커는 단순한 영화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무서운 영화,
또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는 영화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처음 볼 땐 그냥 '조커가 왜 이렇게 화제가 됐지?' 싶었어요.
근데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는 우리 사회가 가진 약함, 냉정함,
그리고 무심함을 드러내는 아주 특별한 방식의 기록입니다.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우리 주변에 아서 플렉 같은 사람이 없는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당신의 한마디 관심, 한 번의 대화가 누군가를 조커가 아닌 사람으로 남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요약 표 – 조커 리뷰 핵심 정리
구분 | 내용 요약 |
---|---|
개봉연도 | 2019년 |
주제 | 사회 비판, 정신질환, 고립, 불평등 |
감독 | 토드 필립스 |
주연 | 호아킨 피닉스 (아서 플렉 / 조커) |
현재 의미 | 2024년 사회 문제와 다시 맞닿으며 재조명 |